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Mad Pride라는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를 억압하는 강압적인 치료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고, 정신 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역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자폐증과 ADHD와 같은 진단을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닌 신경 다양성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하며, 그러한 것들이 자랑스러운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이 조증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세상이 그에 적응하여 돌아갈 것이고, 많은 사람이 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망상적 신념이 아니게 된다. 다수의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책은 Mad Pride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정체성이 사회에서 존재하고 인정받는 방법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어떠한 근거로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정체성에 대한 헤겔의 의견에 따르면, 자기의식의 충족이란 세계 내에서도 진리로 승인되고 실현될 때 일어난다. 이 승인과 실현은 그 주체 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실천 속에서 일어난다. 자기정체성은 외부의 세계를 통해 매개되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 정체성을 자기의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주체가 자기성찰을 통해서만 자기에 대한 앎을 곧바로 획득할 수 있다는 이론은 ‘나는 나’라는 식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오늘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주어진 답이 없는, 각 개인이 스스로 다뤄야 하는 열린 질문이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쉬운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종교, 배경, 직업, 인종 등과 같은 속성이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지 찾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즉, 자신이 속한 집단 범주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위치 시키는 방식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친구가, 선생님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 모든 것은 무엇이 풍부하고 의미 있는 삶을 이루는지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런 질문이 제기되는 시대적 조건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변천을 겪어왔다. 변화의 전조는 단일하고 자명한 만능서사가 붕괴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좋음에 대한 다수의 지향이 존재하며, 어떤 단일한 서사도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하거나 그것이 유일한 진리라 주장할 수 없다. 만약 특정한 공동체에 강하게 속하며, 일과 결혼, 출산과 양육으로 특정지어지는 이정표를 그대로 따르며 사회에 전체적으로 동기화된 경우, 삶은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런 근본적인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분투가 된다.
이상적 삶의 규범과 가치는 변화와 불확실성, 독특함이 아닌 반복과 안정성, 순응을 통해 달성된다. 따라서 주체는 삶을 원하는대로 이끌기보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것을 따르기를 요구받는다. 개인은 언제나 주류적 규범에 나름대로 반응할 것이므로, 이것 자체가 개인의 행위주체성을 제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견지하게 되면, 정해진 목표의 달성이 좌정될 때 자시 삶의 목적과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왜 그런 실패가 발생했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결혼하지 않고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당신이 진정 결혼을 원하는가’를 검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결혼이라는 삶의 중요한 이정표를 성휘하는 데 실패한 이유’를 묻게 한다는 것이다.
허나 주체는 독립적 타자의 인정에 의존할 때 비로소 독립적인 행위주체가 된다. 주체의 자기개념이 확립되기 위해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독립성을 가져야 하며 동시에 그 독립성에 대한 부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공통 공간에 존재하며 개인의 삶을 위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뜬금없이 왕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반대로 자신의 특성이 없는채로 사회에 완전히 순응한다면 모두 성공적인 행위주체로 간주될 수 없다. 여기서의 핵심 쟁점은 인정투쟁에서 도출된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세계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이것을 매드운동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매드운동이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정체성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계를 재건하자고 주장하는가? 아니면 문제가 되는 정체정이 일관성이 없거나 도덕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이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 내리는 결론은 매드 프라이드 담론을 의심할 여지 없이 타당한 것이나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광기를 정체성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로를 가려야한다는 것이다. 인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정체성은 실패한 정체성이 아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이어야 하며, 분열과 단절 없이 통합된 정신의 표현이어야 하고, 충분한 기간에 걸쳐 지속되어야 한다. 자신이 영국 여왕이라 믿거나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목소리를 듣는 등의 망상 증상은 자기 인식의 실패로, 주체의 소유권과 저자성의 분리를 경험하는 조현병·양극성 장애 등은 통합되고 연속된 자아의 실패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광기를 인정의 범위 안으로 포섭하기 위해 손상을 극복하고 광기를 정돈하는 길을 제시한다. 정체성으로서의 광기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사회적으로 승인될 수 있는 문화적 레퍼토리로 새롭게 가다듬고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어렵게 말했지만, 당사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과 존중, 인정이 필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결론이 엄청 새롭고 상쾌하진 않지만 마지막 결론을 위해 모든 근본적 구성 요소를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따져나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인간의 정체성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조건’에 대한 설명 과정을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정체성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내용은 매드 프라이드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 아닐까. 요즘 고민하는 것들을 언어적으로,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할 방식을 간접적으로 얻게 된 것 같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