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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인문

총 11개의 글이 있습니다.
결정의 순간들
인문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 자동차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정몽규씨의 성함을 왠지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아서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읽으면서 떠올려보니 최근 북중미 월드컵과 축협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 들은 것 같더라.. '결정의 순간들'은 정주영 회장이 처음 현대그룹의 기반을 세우고, 그 뒤를 이은 정세영 회장의 이야기 이후로 정몽규 회장 본인이 HDC에서 걸어온 발자취에 대한 자서전이다. 초반부 현대자동차에 대한 설명에서, 이전엔 포드의 모델 라이센스를 들여와서 (포티나 모델 등을) 생산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포니라는 독자 모델을 성공적으로 개발해내며 자체 기반을 세우고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현대가 기아를 인수했다는 사실도
살아있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인문
세상에서 가장 선량하고 똑똑한 내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자. 그 잘난 과학수사를 했더니 '혈중알코올 농도가 0.1%나 될 때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줄도 모르고 죽었다'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내 '착한 아들'이 죽을 이유로는 그것이 타당하지 않아보인다. '내 아들의 등골을 빼먹던 며느리가 내 아들의 생명보험을 들어두고는 매일 일부터 술을 권해서' 그랬거나, '내 아들의 성공을 질투하던 친구가 같이 술을 마시다가 일부러 환기를 안하고 있는데, 그 집 아버지가 검찰과 친구라서 사건을 덮은' 이유라거나.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는 사실을 말하는 과학수사보다 이런 식의 음모론적 스토리텔링이 더 그럴싸하게 들릴 것이다. 그래야 허무하지 않고, 그래야 누군가를 탓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일 때
인문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이방인이나 소수자가 아니라 환영받고 존중받는 구성원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책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집단학살의 과정이 얼마나 비논리적으로 이뤄졌는지, 거기에 동화되거나 동화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때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상세하게 듣는 일은 당연히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지만 도덕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거리가 느껴지기도 하고, 이걸 어떻게 판단하고 얼마나 공감해야하나 고민하게 되는 책이었다. 당시 집단학살에 가세한 사람 중에는 의외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동료들이 업무에 괴로워하고 죄책감을 느낄 때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동료들이 덜 힘들어하기를,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
The Seven Basic Plots
인문
모든 이야기는 공통된 흐름을 따른다. 먼저 주인공은 모험에 대한 소명을 받는다. 이어서 모험이 시작되고, 주인공은 초반의 성공으로 자신이 무적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곧 좌절한다. 적과의 첫 대면에서 무적이라는 환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상황은 악몽 단계에서 최악에 이른다. 이는 플롯의 클라이맥스로,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해결 단계에서 주인공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둔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핵심은, 이야기에 아무리 많은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이야기가 진짜 다루는 건 주인공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의 운명에 자신을 투영하며, 그가 점차 자아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종착지다. 결국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
무지의 즐거움
인문
저는 '지성'이랑 집단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집단 안에서 활발한 대화가 오가고 이론이 난무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지성의 작동'이고, 이런 일은 개인 혼자서는 좀처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지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지성인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의 지성이 활성화되고, 그 덕에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상태'가 생기는지 아닌지로 평가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한사람이 가진 지식과 정보량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두뇌 회전이 빠른지가 기준이 아니라는 거죠. 집단의 지적 퍼포먼스를 향상해 나가는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말은 반대 상황을 떠올려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효율성
인문
서양인들에게 효율성을 특정짓는 것은 모델화다. 모델화는 실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관념적으로 먼저 구상하고, 그 후에 의지와 행동을 통해 관념적 구상을 현실 속에 구체화하는 구도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목적을 관념적 형태로 떠올리고, 의지와 행동으로 그 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다. 완전성은 최종적 등급의 설정이 가능하다. 불완전한 것들은 그 끝이 없지만 완전한 것은 최선이 있다. 플라톤이 꿈꾸는 국가도 이상적인 모델을 그리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이론, 이상과 실천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점에 대해 고민했다. 이 점에 대해서 그는 시선을 균형점에 고정시킨 채 중간의 이상을 향해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설명한다. 모델화는 수학, 과학 등 기술적 영역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인간관계, 전쟁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인문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Mad Pride](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를 억압하는 강압적인 치료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고, 정신 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역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자폐증과 ADHD와 같은 진단을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닌 신경 다양성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하며, 그러한 것들이 자랑스러운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이 조증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세상이 그에 적응하여 돌아갈 것이고, 많은 사람이 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망상적 신념이 아니게 된다. 다수의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
발자크 평전
인문
발자크가 벌여놓은 사업이나 도박에 대한 얘기. 빚 청산을 위해 광고 문구부터 소설까지 가리지 않고 글을 써내며 다작하였고, 거대한 인간극을 구상해 채워나가던 중 명을 다했다는 얘기 등, 모든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의 치열함으로 느껴졌다. 조급함과 즉흥성 때문이었을까 원했던만큼 큰 사업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빚에 허덕이지만, 글에 미친듯한 열정을 가지고 충실하게 살았다는 점은 부러웠다. 어떻게 보면 추하고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이루고 싶은 것을 떠올리고 표현하는 과정과 그 진심은 무엇보다도 낭만적인 것 같다. 나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향에 대한 불안
인문
블룸 이전의 문학이론이 “후배 작가가 선배 작가를 모방하는 문학 전통의 연속성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해왔다면, 블룸 이론은 문학 전통의 연속성과 유사성이 아닌 ‘왜곡’과 ‘차이’ ‘오역’에 주목한다. 블룸에게 중요한 것은 문학 전통의 연속성이 아니라 불연속성, 즉 선배 작가의 모방이 아니라 선배 작가의 모방을 넘어서 능가하는 것이며, 그는 이것을 ‘시적 오류’라는 창조적 해석을 두고 펼쳐지는 갈등과 투쟁의 미학이라고 지칭한다. 다시 말해 후배 시인들은 위대한 선배 시인의 ‘영향’이라는 방해자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스스로 독창적인 시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배 시인은 선배 시인을 흠모하고 추앙하면서 모방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려면 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안과 씨름
담론
인문
담론은 신영복이 교수로서 마지막으로 했던 강의의 내용을 풀어서 적어놓은 책인데, 동양 고전을 읽으며 그 이야기와 내용을 설명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동양 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뻔한 말일 것 같은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지만, 선입견과는 다르게 삶의 근처로 따듯하게 다가와 큰 울림을 줬다. 단순히 지루하게 읊고 이것은 이러한 뜻이다하며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과 그에 대한 신영복의 생각, 경험을 함께 친근하게 이야기해준다. 때문에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재밌고 몰입이 잘 된다. 그리고 내용이 고전이기도 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분이 생각이 깊으시기도해서,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하며 더 오랜기간 살았던 사람들의 연륜과 지혜를 전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저렇게
지성적 회심
인문
신은 정말로 존재할까? 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존재를 숭배하고 신앙하는걸까? 과학적으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허구에 종교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곳에 빠져드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가상의 전지전능한 신은 우리 인생과 전혀 상관이 없고, 현실을 알아가는데 신학은 불필요한 요소인 것만 같다. 『지성적 회심』의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 또한, 젊은 시절에 "신학은 의미없는 학문이고, 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결국 무신론에 도달하게된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과학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회심하였다. 그가 완강한 무신론자에서부터 신학을 받아들이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이 책에서 자전적으로 풀어낸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말하는 신학의 의의는 과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