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대 구분
- 1910년대: 무단통치(헌병경찰통치), 회사령, 토지조사사업
- 1920~30년대 초반: 문화통치, 산미증식계획, 민족운동
- 1930년대 중반 이후: 민족말살정책, 국가총동원법, 황국신민화
1910년대 통치
무단통치
- 조선총독부가 일제의 조선 통치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 데라우치가 초대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를 맡았다(헌병경찰통치)
- 조선인에게만 태형령을 내렸다
- 교사가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수업하였다
회사령
-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는 회사령이 공포되었다
토지조사사업
- 기한 내에 소유지를 신고하게 하는 토지 조사령을 제정하였다
-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였다
3·1 운동
배경
-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하였다
-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이 발표되었다
-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전개와 영향
- 평화적 만세 운동에서 무력 투쟁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 전개 과정에서 제암리 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 일제 강점기 때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 중국의 5·4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대 민족운동
물산장려운동
- 조선 관세령 폐지와 회사령 폐지가 배경이 되었다
- 조선 물산 장려회가 평양에서 창립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 ”조선 사람 조선 것”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 평양에서 조만식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 자작회, 토산 애용 부인회 등이 활동하였다
- 조선 총독부의 탄압과 방해로 실패하였다
민립대학 설립운동
-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에서 모금 활동을 주도하였다(이상재 주도, 1923년)
- 경성 제국 대학이 설립되며 무산되었다(1924년)
산미증식계획
- 일본의 쌀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 생산량보다 수탈량이 많아 조선 식량난이 심화되었다
- 쌀 증산 비용 전가로 소작쟁의 발생이 증가하였다
형평운동
-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가 창립되었다(1923년)
-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요구하였다
치안유지법
- 일제의 국가 체제와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사상(사회주의자)을 통제하였다
- 독립운동 탄압에도 적용되었다(1925년)
6·10 만세운동
-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삼아 일어났다
- 민족 유일당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사회주의 + 민족주의 계열 연대)
신간회
- 정우회 선언의 영향으로 결성되었다
- 광주 학생 항일운동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
- 광주에서 고등 보통학교 학생 대 중학생이 충돌하였다
- 성진회와 각 학교 독서회에 의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 전국적인 시위와 동맹 휴학으로 확산하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민족말살정책
- 중일 전쟁(1937~) 이후 국가 총동원법 시행
- 황국 신민 서사의 암송을 강요하였다
- 창씨개명을 강요하였다
- 지원병, 국방헌금 모금, 국민 징용령, 여자 정신 근로령
-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 제정(1941년)
- 애국반을 조직하여 한국인의 생활을 통제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초기 활동
- 3·1 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서 수립(1919.4.11.)
- 연통제 운영, 교통국(이륭양행 등) 설치, 독립 공채 발행
- 파리강화회의에 독립 청원서 제출
- 미국에 구미 위원부 설치
위기와 변화
- 연통제 붕괴, 외교활동 부진 등으로 국민대표회의 개최(1923, 상하이)
-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하였다
- 대통령제(이승만, 박은식) → 국무령 중심 → 국무위원 중심 → 주석제(김구)
1930년대 이후
- 한인애국단 조직
-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건국 강령 발표
- 1940년대: 한국광복군 창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농민운동
- 조선 노농 총동맹(1924): 처음에는 농민+노동이 합쳐짐
- 암태도 소작쟁의(1923):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서 고율의 소작료에 반발하여 발생
- 조선 농민 총동맹 결성(1927)
- 혁명적 농민 조합 결성(1930년대 초반)
- 농촌 진흥 운동(1930년대 초반)
노동운동
- 원산 총파업: 라이징 선 석유회사의 한국인 구타 사건을 계기로 시작
-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노동 운동이었다
- 일본, 프랑스 등 외국 노동 단체로부터 격려 전문을 받았다
- 강주룡이 평양 을밀대 지붕 위 고공 농성(1931)
소년운동과 여성운동
-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소년 운동을 전개하였다
- 근우회(1927): 민족 협동 전선으로 결성
1910년대 독립운동
국내
- 독립의군부 조직(임병찬): 고종의 밀지, 복벽주의, 국권반환요구서 발송
- 대한광복회(박상진): 대구에서 조직, 근대 공화주의 표방, 군자금 모금, 친일파 처단 활동
- 송죽회: 평양 숭의 여학교에서 결성
국외
- 서간도: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설립
- 북간도: 서전서숙, 명동학교 설립
- 연해주: 대한광복군정부 조직
- 미주: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 조직
- 일본: 학생을 중심으로 2·8 독립선언
1920년대 독립운동
의열단
- 김원봉 등이 조직하여 일제 기관의 파괴와 조선 총독 이하의 관리 및 매국노의 암살 등을 목표로 하였다
-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지침으로 삼았다
독립군 활동
- 봉오동 전투 → 청산리 전투 → 간도 참변 → 자유시 참변 → 미쓰야 협정
-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 홍범도 부대와 연합하여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 간도 참변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 만주 군벌과 일제가 미쓰야 협정을 체결하였다
1930년대 초 독립운동
한국독립군
- 한국 독립당의 군사 조직, 북만주 지역에서 활동
-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 대표전투: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 중국군과 한중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다
조선혁명군
- 조선 혁명단의 군사조직,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
-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
- 대표전투: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한인애국단
- 김구가 일제 요인 제거, 주요 기관 파괴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조직
- 이봉창: 도쿄에서 일왕이 탄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 윤봉길: 상하이 홍커우 공원 폭탄 투척
1930년대 중반 이후 독립운동
조선의용대
- 김원봉이 우한에서 설립(1938)
-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
-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의 군사 조직
한국광복군
-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군사 조직(1940)
- 충칭에서 조직, 총사령관 지청천
-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으로 편입
-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고, 국내 진입 작전 준비
일제강점기 문화
종교
- 천도교: 만세보 발행, 개벽·신여성 등 잡지 발간, 방정환 어린이날 제정
- 대종교: 나철이 단군 신앙을 바탕으로 창시, 항일 무장 단체(중광단) 결성
- 개신교: 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 보급
- 원불교: 박중빈을 중심으로 새생활 운동
- 천주교: 의민단 활동
- 불교: 한용운의 불교유신론, 사찰령 폐지 주장
역사학
- 신채호: 조선상고사(아와 비아의 투쟁), 독사신론(민족이 역사 서술의 중심), 조선혁명선언 집필
- 박은식: 한국통사, 유교구신론(실천적 유교정신 강조),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식민사학의 정체성론 반박)
- 정인보: 조선사연구, 민족의 얼 강조, 정약용 저술 정리(여유당전서)
국어연구
- 조선어연구회(1921): 한글 잡지, 가갸날 제정
- 조선어학회(1931): 우리말 큰 사전 편찬 시도,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 조선어학회 사건(최현배 등)
문학과 예술
- 심훈: 상록수(브나로드 운동 소재)
- 윤동주: 별 헤는 밤, 참회록 등
- 나운규: 아리랑(1926)
- 카프(KAPF): 신경향파 작가
- 토월회: 근대극 형식 도입
기타
- 조선교육령: 1차(1911
22) 초등 4년으로 축소, 2차(192238) 조선어·역사 교육 축소, 3·4차(1938~45) 조선어 금지 - 동아일보: 일장기 삭제한 손기정 사진, 브나로드 운동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