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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8 생각 정리2

3월 이후로 지금까지를 돌아 보면 그렇게 만족스럽다 할 노력이나 과정이라고 설명하게 될 듯한 무언가조차 별로 없었다. 몇 달 동안은 개인적으로 우울한 감정에 완전히 잠식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다른 고민 때문에 절망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흐리게 보인다. 내가 완전히 주저앉진 못한 상태에서 내가 인식하는 심정이나 상황은 더 복잡한 방향으로 빠지고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점에선 더 오리무중이 되었다.

고민과 노력을 통해서 어떤 대상에게 효능을 주는 것 같은 기분, 그 대상을 자신으로 보고 자기계발로써 그런 기분을 채울 수도 있고, 타인을 대상으로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달성할 수도 있다. 자기계발이라고 할만한 게 -조금 더 장기적일 순 있어도- 타인에게 효능을 주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명시적으로 전달됨이 즉시 느껴지지 않더라도 의도를 가지고 상황을 해석함으로 해결되는 심정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설명들이 결국 너무나 결과론적이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설명하기 나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내가 그런 기분을 가지기 위해 하고 있는 행동,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의 노력들은 어떤 결과를 충분히 만들었다고 느껴지지 않는 걸 자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도, 멋지다고 생각했던 아니면 괜찮다고 느꼈던 것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개선해야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요소(내 좁은 식견에서의 판단이고, 이것이 고정되어있지도 않다는 점은 맞다.)를 실제로 개선하거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초인이 나타나서 그런 기분에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이루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보여주고 경험한다면 뭔가 달라질까? 내가 이상적이지 않음을 인식할 틈 없이 이뤄진다면 잘 따라가고 있다는 안주만으로 적당한 자존감을 느끼겠지. 아니면 그런 사람의 영향 범위에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거고, 세부적인 부분에선 내가 안주하고 생각을 멈추게되는 점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게 개선 필요 지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인식한 문제를 누가 해결하거나 그런 것만이 관건이라면 분발해야겠다 정도로 마음가짐을 정할 수 있었을텐데, 어떤 것을 현안로 인식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먼저 할 것이냐 하는 우선순위를 생각할 때 각자가 생각하고 붙이는 이유들이 한 발짝만 뒤에서 생각해도 무엇이든 합리적이라고 설득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금 위치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냥 혼란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가 아닌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이루고 싶을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붙여 말하기 나름이고 둘러대기 나름이라 여기기에 성취에 대한 확인이나 노력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무슨 얘기나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되었다하는 식의 경험담으로 자신의 희망과 성취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야 지금까지 봐왔지만 이미 있었던 걸 설명하는 것이든 현재와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든 다 듣기 좋은 식으로만 정리해서 보여주는건 관심있지도 않고 나도 그런 식이 싫은 마음이 있다. 사람의 양면성이 내심 위선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인생 경험이 부족한 탓일까. 마천루 바라보는 자격 따지며 괜히 덜 무뎌지려는 발악일까.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취미와 수단이 있지 않나,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고 받아들이는 감각을 처리하는 안에서 어떤 특징을 밀고 주장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그렇게 주장하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만으로 무언가 바뀌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않는다.

의도와 달성이라는 것부터 다 기분의 문제라는 점도 사실 조금 어렵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도 결국 결과가 따라오면 따라온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따라오지 않은대로 해석하고 어떻게든 이유를 설명하려 하는 후행적 이유 붙이기가 반복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냥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좋은 이유를 붙이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정말 최선인가 싶다. 그냥 과정을 즐기기, 아니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기.가 언제나 기본 기조였으나 그 정도 수준에서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고려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상황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게 실제로 나에게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 붙이기 분야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느리고 부조리하고 복합적인 식으로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하면 그걸 벗어나서 마음이든 행동이든 기분으로라도 심지를 가지고 전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찾아보고 싶다. 그러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퍼즐 풀기로 설명하는 유형의 활동에 갇히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에서도 가능성에 대한 문제에서도 원하지 않았다. 아직 시간적 조건이 되는 만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싶은 그런 의지가 있으므로, 그나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루거나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고려하는 상태에서 신경쓰이고 불편한 것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게 된다.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환경에서 거슬리는 것들을 어느정도 치워놓거나 마음 바깥에 방관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마냥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반골의 반골을 어찌하기가 어렵다.

내가 집중해서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은 가정할 수 없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내가 자신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무엇을 하든 외부의 자극과 이런저런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그게 개인사가 되었든 속한 조직, 나라의 방향이 되었든 세계의 동향이 되었든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범위에서 또 다른 것을 경험하면서 적응하고 배우고 바뀌는 것이 내 인생에서 뺴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기분을 느끼기 위해 더 살아야하는걸까. 다양한 삶의 형태라는 게 있겠지만 그냥 우연성에 지배받기보단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존재하고 싶고 지금은 총력을 다해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바꿀 힘 없이 어느 부분에서의 자각을 무력하게 포기하는 수 밖에 없는 기분이다. 내가 무언가 하는 것으로 장기적인 효능을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내가 생각하는 범위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에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행동 하냐의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둘 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에 더 집중하고 싶은지에 대한 같은 문제이고 이 방식에 접근하기 위한 두 방식 중 어떤 것도 조치할 각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토』의 안나가 그랬듯 현재에서 달아날 수 없이 끈적끈적한 반죽의 상태에서…


다른 얘기를 조금 하자면, 『구토』는 3년 전 처음 읽고 밀리의 서재로만 몇 번 다시 봤는데 한 번쯤은 종이책으로 만지며 읽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최근에 알라딘에서 중고로 한 권 샀다. 종이책일뿐 동일한 판본이니 내용도 같은데, 이 책의 전 주인이 적어두었을 메모와 밑줄이 섬세하게 남아있다. 딱 51쪽까지.

가장 마지막에 형광펜으로 강조되어있는 구절은 “자신의 얼굴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함께 사는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이 보는 모습으로 보는 법을 배운다.”하는 부분이다. 거울을 볼 때도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규정하는 사회적 동물의 특성상,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행동에 대한 가치 판단에 영향을 꽤 받았고 내가 어떤 사람으로 얘기되고 보여지는지도 참고하게 된다. 회사 팀원 분들이 보시는 나는 내가 안에서 바라보는 나보다 훨씬 둔한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로 조리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 척하는 것 치고는 이것저것 생각만 하고 추구하려 할 뿐 실질적으로 효과있게 드러내는 것 없이 순응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만 같은 식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를 더 둔해보이게, 그리고 실제로도 둔하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어떤 깨달음이 찾아와 득도한다는 걸 상상하긴 어렵다. 가능성 있는 선에서 앞으로의 실천 방안을 생각해보자면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알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길 준비 하거나, 오늘의 나열된 생각으로 내 행동을 조금 조정하는 것 정도가 있겠다. 내가 버리거나 무뎌져야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챙겨야하는 것들을 아우르는 것 중에 아직 묘책이 없다.

다음이 어떤 방식으로 있을지는 여전히 전혀 모르겠다. 그냥 모르는 상태가 앞으로 조금 더 유지될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