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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메논은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탁월함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연습을 통해 생기는 것인가, 아니면 본성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 여기서 탁월함은 그리스어 ‘아레테’를 번역한 것으로, 덕이나 뛰어남을 뜻한다. 단순히 도덕적인 것만이 아니라, 어떤 것이 제 기능을 잘 발휘하는 상태를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그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탁월함이 무엇인지를 더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논이 여러 답을 내놓지만 소크라테스는 계속 반박한다. 남자의 탁월함, 여자의 탁월함, 아이의 탁월함을 나열하는 것은 탁월함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아니라는 식으로. 결국 메논은 답답해하며 이렇게 반박한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무언가를 찾으려면 그게 뭔지 알아야 하는데, 이미 알면 찾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탐구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상기설로 답한다. 배움이란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떠올리는, 즉 상기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누군가 가르쳐준 답은 금방 잊힌다. 하지만 스스로 고민하며 찾은 답은 오래 남는다. 아마 그 과정에서 사고의 구조 자체가 바뀌기 때문일 것이다. 답을 듣는 건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지만, 답을 찾는 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답을 주지 않고 질문만 한다. 산파가 아이를 대신 낳아주지 않듯, 깨달음도 대신 줄 수 없다. 다만 이끌어낼 뿐이다. 이게 진짜 가르침이라면, 좋은 스승은 답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이다.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는가를 이어서 논하기 위해 가정을 해보며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탁월함이 지식이라고 가정한다. 돈, 건강, 명예 같은 것들이 유용하려면 절제, 정의, 용기, 지혜를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도 지식 없이 행해지면 해롭다. 즉 무언가를 유용하게, 탁월하게 만드는 것은 지식이다. 지식이라면 가르칠 수 있을 테니, 탁월함도 가르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이라면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탁월함의 교사는 누구인가. 소피스트들은 스스로 탁월함을 안다고 주장하며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아는 건지 의심스럽다. (?) 그렇다면 훌륭한 정치가들은?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같은 사람들은 분명 탁월했다. 그런데 그들의 자식들은 아버지만큼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기마술이나 예술 같은 잡기술은 선생을 붙여 가르쳤을 텐데, 정작 본인이 지닌 탁월함은 전수하지 못한 것이다. 탁월함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부분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탁월함의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지식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지식과 올바른 확신을 구분한다. 길을 아는 사람도 올바르게 안내하지만, 길을 모르더라도 올바른 확신을 가진 사람이 가는 방향이 맞다면 그것도 올바른 인도다. 둘 다 올바른 행동으로 이끌 수 있지만, 올바른 확신은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어서 쉽게 흔들린다. 지식은 근거를 통해 묶여 있어서 사라지지 않는다.

탁월함이 지식이 아니라면 올바른 확신일 것이다. 그런데 올바른 확신은 누군가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신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훌륭한 정치가들은 신의 인도를 받는 예언가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것이 가설의 방법으로 세운 가정에 불과하다고 덧붙인다. 탁월함이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대화편은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끝난다.

이 책을 읽고 지식과 올바른 의견의 구분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올바른 의견이라 해도 행동을 이끌 수 있다면 당장은 문제없다. 하지만 흔들릴 때 버틸 수 있는 건 근거가 있는 것들 뿐일 것이다. 그런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인과관계를 후행적으로 붙이려는 노력을 누구나 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것들에 사람들이 잘 속기도 하는 것 같은데) 궁극적으로 항상 옳은 건 없다고 아직 생각한다.

그렇다면 근거를 최대한 추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시도해보는 것. 그리고 탁월함을 스스로 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많이 질문하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순간순간 잘 판단하며 나아가는 것이 일단의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