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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ven Basic Plots

모든 이야기는 공통된 흐름을 따른다. 먼저 주인공은 모험에 대한 소명을 받는다. 이어서 모험이 시작되고, 주인공은 초반의 성공으로 자신이 무적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곧 좌절한다. 적과의 첫 대면에서 무적이라는 환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상황은 악몽 단계에서 최악에 이른다. 이는 플롯의 클라이맥스로,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해결 단계에서 주인공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둔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핵심은, 이야기에 아무리 많은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이야기가 진짜 다루는 건 단 하나. 바로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의 운명에 자신을 투영하며, 그가 점차 자아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종착지다. 결국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 중심인물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각각의 인물이 나타내는 것은 사실 주인공 내면의 어떤 측면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들은 결국 매력적인 인생을, 매력적인 인간의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토리는 인생을 얘기하기 위한 수단인듯 하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 일인듯 설명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핑계이다. 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세계, 환경, 인물로 표현할지 상상하고 풍성하게 꾸며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스토리로 엮어 설명하려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인생의 주변에는 스쳐지나가는 많은 순간, 시간, 선택들이 있다. 그 중 이어지는 것들을 엮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면 삶을 주도하는 느낌도 들고 막 그런 것 같다.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할 것인지가 본인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많이 좌우된다. 어찌보면 자기세뇌, 자기합리화, 나쁘게는 정신승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내용을 자기계발서에서 다루기도 한다. 나는 내 자신의 스토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나는 창작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엄두는 감히 안 든다. 초등학교 때 윈도우 메모장에 소설 같은걸 써보겠다고 시도했던 기억은 있는데, 재능이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하지만 존귀하고 엄중한 인생을 창작하고 이어나가는 일은, 다시 말해 나를 알고 만들어가는 과정은 피할 수 없기에 수행할 뿐이다. 문학적 창작은 포기할 수 있지만 실존적 창작은 포기할 수 없다. 과거에 대해선 현재에 유리한대로 편집하고 엮으면 되니 쉽다. 그럼 과연 현재와 미래는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나갈지가 항상 문제다.

인생의 목표가 있는 사람에 대해 존경심이 든다. 그러면서 그 목표를 불완전하게 추구하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혐오가 있다. 혐오는 사람에 대한 건 아니다. 나는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점을 어느정돈 다 품고 가는건가? 어느 면에서 위선적이어도 중요한 걸 잘 한다면 문제 없는건가? 그럼 내가 나의 그런 면을 발견하면 나에 대한 싫은 마음을 참을 수 있을지. 그걸 장담할 수 없기에 목표가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게 조금 두렵다. 그래서 인생의 목표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멋있고 대단해보인다.

목표를 선언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미래의 자아를 현재의 언어로 구속하는 행위 아닌가. 자아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면, 이는 존재하지 않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게 하는 약속이 된다. 이 약속을 지키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낳는다.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선언에 자신을 맞춰야 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목표 설정을 거부하는 것 역시 하나의 목표고, 정체성 규정을 피하는 것 역시 하나의 정체성인 것 같다. 목표를 말하기 어렵다는 것도 결국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내가 붙인 이유이자 스토리텔링이다.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에 매 순간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 이 시스템의 특성상 일관성의 부재는 실패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라 쳐야할 것 같다. 결국 자아의 서사를 구성하려는 충동과 그 서사의 허구성을 아는 자각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자연스럽다.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작가인 이상한 위치. 이야기를 살면서 동시에 쓰는 모순. 이 긴장은 해소될 수 없고, 어쩌면 해소되어서도 안 되는 것 같다.

좋은 이야기가 그렇듯, 사람도 초반의 자만과 중반의 좌절을 거쳐 무언가를 깨달아간다. 다만 책과 달리, 명확한 결말이 없어서 매일 다음 장을 쓰면서, 동시에 이전 장을 수정하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주인공이 되어야하는듯 하다.

책 내용은 스토리를 창작하는 작가를 위한 작법 이론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작법과 연출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느껴졌다. 책 내용이 궁금한 분들에겐 아래 두 글을 추천하고 싶다.

결국 잘 하는거 잘하면 만사장땡.

그렇지 못할 때 드는 잡생각을 완전한 이완이 아닌 방향으로 잘 정리하는 것이 참 중요한 능력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