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에게 효율성을 특정짓는 것은 모델화다. 모델화는 실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관념적으로 먼저 구상하고, 그 후에 의지와 행동을 통해 관념적 구상을 현실 속에 구체화하는 구도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목적을 관념적 형태로 떠올리고, 의지와 행동으로 그 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다. 완전성은 최종적 등급의 설정이 가능하다. 불완전한 것들은 그 끝이 없지만 완전한 것은 최선이 있다. 플라톤이 꿈꾸는 국가도 이상적인 모델을 그리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이론, 이상과 실천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점에 대해 고민했다. 이 점에 대해서 그는 시선을 균형점에 고정시킨 채 중간의 이상을 향해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설명한다.
모델화는 수학, 과학 등 기술적 영역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인간관계, 전쟁 등 동태적 영역에선 한계가 있다. 예견하고 투영했던 것으로부터 항상 이탈한다면 모델화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노련한 러시아 장군 쿠투조프는 한 시간 넘게 낭독되는 작전 계획을 듣지 않는다. 내일 아침 작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음 날 아침 적군의 상태, 날씨 등 모든 것이 예상과 반대로 움직였고 부대는 철저하게 패배했다. 전쟁은 마찰이다. 계속 균형을 다시 잡고 저항을 무찌르고 억지로 이루어내야한다. 항상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서양에서 영웅주의가 발달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요소이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해서 닥치면 애초의 모든 계획이 의미없어지고, 천재적 능력을 가진 비범한 영웅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델링과 영웅 외의 방식으로 전쟁을 사유하는 건 불가능할까? 중국에서는 ‘형세’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본다. 서구적 효율성인 모델화가 ‘관념적 목적의 실현을 위해 주체가 개입하는 것’을 핵심으로 본다면, 형세의 개념에 따르면 주체의 개입보다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객관적 조건’을 기준으로 전략을 세운다. 이는 『손자병법 』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병법서의 첫 장에서 말하는 계획은 서구적 모델링과 다르게 현재 작동 중인 역학 관계와 잠재력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내가 한 것, 가진 것을 정확히 헤아려보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고 반응하는 전쟁의 흐름은 항상 상대적이며 두 진영 간의 관계에 따른 상황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형세 개념은 서구적 전략 개념에 난점을 일으켰던 ‘상황’을 오히려 전략의 축으로써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눈에 띄는 공적을 세우기보단, 승리할 수 있는 유리한 형세를 만드는 방향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적의 식량이 넉넉하면 적을 굶주림에 빠지도록 만들고, 적이 안정되어 있으면 도발해서 동요시킨다. 이러한 전략은 직접적 공격이라라기보다는 상황, 즉 객관적 조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중국적 효율성은 눈에 띄지 않을 때 그 효율이 극대화된다.
상황의 흐름에 의거하는 전쟁 전략, 그리고 인간의 성향을 간파하는 외교 전략의 논리는 역설적으로 유가의 도덕에서 가장 깊은 의미로 드러난다.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라는 맹자의 말은 도덕의 효율성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의 선과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군주는 정쟁 없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선하고 어진 군주의 통치는 경쟁자들의 “자연적 경향성”에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저항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현자는 특권적 관념이 없고 지켜야 할 의무를 미리 부과하지도 않으며, 고정된 입장에 자신을 고착화시키지도 않고, 결과적으로 그의 인격을 개별화할 수 없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자의 인격은 완전히 개방적이며 운행 전체의 흐름과 일치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상황과 사건의 흐름과 연동하여 나아간다.
이 책은 동서 비교철학을 연구한 프랑수아 줄리앙의 관점을 반영하여 서구적 효율성인 모델화의 기원과 의미를 역사적 사실로부터 추적하고, 중국적 효율성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처음 떠올린 건 어떤 것을 생산하는 효율이었는데, 속 내용은 목표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효율적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즉 서양의 관점처럼 정해진 목표를 향해 최단거리로 다가가는 것을 효율로 볼 것인지, 아니면 동양의 관점처럼 계획대로 이루지 못하더라도 상황의 마찰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효율로 볼 것인지부터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효율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의 제목에서 생산을 떠올릴 것 같아서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완벽히 인문철학적 책임에도 다른 생각을 많이 했다. 주된 논리는 동서양 문화에서 존재해왔던 전쟁과 나라간 정세를 바탕으로 펼쳐지지만 개인적인 인생에서 여러 상황을 마주할 때 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생각하는데도 도움됐다.
단순히 효율성이라는 키워드에 끌려서 읽게 되었고, 실제 내용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는 책이었다. 같은 내용을 자기개발서스럽게 다듬었다면 흥미가 생기지 않았을텐데 꽤 의도적인 흐름과, 각 문화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분석하는 부분이 공존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시간이 된다면 프랑수아 줄리앙의 저작인『전략』도 직접 읽어보고 싶다. 나도 더 효율적으로 살고 싶다..
참고
-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k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52b83c0ae7347ad4ffe0bdc3ef48d419
-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05032b8b53da1e9e6aae8a972f9116fb
- https://blog.naver.com/sue503/223139044262
- https://youtu.be/NfqlrnyJoxM
-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