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8 담론
오랜만에 철학 서적 여러 권을 읽었다. 프랑스 철학 특유의 논리 전개와 번역체는 매번 나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심신의 안정을 준다. 한동안 내 생각의 큰 변화의 메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 시도했던 책들은 글의 의도와 의미 자체가 당연히 나의 주 사고회로에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참을 수 없이 거창하여 반발과 혼란만 가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중학교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현재 시점의 새로운 발전의 축 또한 철학의 세계로부터 다시 발굴하려 시도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어떤 면에서는 한심하지만 그냥 나의 취향이자 특성이라고 생각하면 합리적이라 할만하지 않나 하는 위로를 해보고 싶다. 인상깊게 찾아본 데카르트, 푸코의 주장들은 감상문으로 다뤄보기 위해 시간을 천천히 내어보려 한다.
지금의 나는 ‘답을 알기 어려운 문제에 잘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나의 현재 지식상으로 기술적인 계산이 아예 불가능한 분야에서 종종 큰 곤경을 겪는다. 잘 대응한 결과 자체를 만들고 싶다는 쪽보단 대응 과정에 있어서 어떻게 임해야하는지에 대한 다짐을 더 구체적이고 자기 신뢰가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세워야할 것 같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회사에 있으면 당연히 나 혼자서는 해낼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의 과제에 참여하게 되고, 그 전체적인 결과와 성과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조직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응당 항상 고민하게 된다. 그 과제 자체는 나 또는 회사 범위 밖의 정치적 상황이나 시류에 따라 매번 바뀌는 것이므로 답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까지는 완전히 납득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 자체를 사회적인 능력의 측면에서 그렇게 능숙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어떤 때는 거의 치명적일 정도로 부정적으로 동작해 극복 필요한 지점으로 느껴진다.
어떤 작업을 통해 효능감을 느낀다는게 후행적 의미 붙이기(결과론적 해석)와 둘러대기 만으로도 가능하단 생각은 여전히 아쉬운 진실 정도로 받아들인 상태이다.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상상이 현실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고 깨지는 과정을 그 이후로 계속해서 확인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름 주장하고 물어보며, 나 스스로의 의지가 크게 재조정되는 경험들이 있었다. 신념이 깨지고 붙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묵시적인 산출물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지금은 동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편향적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떤 위치의 조타수라도 현실 자각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한 내 의견도 자주 말하고, 내 생각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경청하면서 올바른 의견 교류를 달성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상상하고 제안 가능한 구체적인 경로 탐색 방안이라는 것도 동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 더해 나는 토의를 임할 때 한 쪽으로의 편향을 강박적으로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가장 싫은 것은 한 쪽의 권력 섞인 주장에 윤당재상의 수준으로 쉽게 설득당하고, 그러면서도 그걸 의식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듯, 합리적이기 때문에 설득되었다는 듯 구는 타인의 모습이다. 그정도까지 가는 건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그런 상황이 형성된다면 반대쪽의 의견을 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않고, 각 의견의 어느정도 옳은 점을 나의 의견으로 활용하지 않고 인정될 수 있는 범위의 방향성을 형성하는 것조차 피하고자 그저 외부의 의견을 분석하는데 온 공을 들이고 무조건적으로 중간책을 생각하는 것은 갈등에 대한 두려움에 불과하다는걸 알고 있다. 완전히 편향적인 현실감각 부재의 상황을 피하면서 대화 참여자 모두의 동의 범위에 속하는, 즉 대화를 통해 조정된 개인의 일반 지식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협의의 지점을 어떻게 다들 수월하게 찾는건지. 나의 행동이 개입되는 상황에서 그런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대화 상황에 공유되는 기반 컨텍스트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 핑계댈 수 있는 여지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자연 소멸했고, 그냥 혼자만 생각이 많아져서 발언을 주저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더 부적절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는 피드백도 자주 받아왔던 듯 하다. 모든 사람의 개인적인 신념과 어떤 의견에 대한 받아들임 정도를 내가 매순간 가늠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가늠하더라도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인해 바뀌는 때가 허다하겠지만, 그럼에도 상황과 각 개인의 관점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여 생각하고자하는 경향은 완전히 버리지 않는 상태에서 개선안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고려에 실패했을 때 내가 감정적으로 영향 받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건 내가 방향 변화측의 주장에 울분을 가질 정도로 반대하기 때문은 아니고 과거의 관성으로 가지고 있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어떤 것이 해결책일지 모르겠다는 절망감이 동시에 느껴진 점, 그리고 한 쪽에서의 주장이었던 것처럼 우연성에 지배받는데의 거부감과 동감이 섞여서 어쩔 줄 모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밖에 못하겠다. 우연적 인과 패턴에 대한 생각을 나는 완전히 잊은 상태이기도 했던 것 같다. 작년의 고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뒤늦게야 떠올려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러하다. 구질구질한 공감 코스프레라 생각하면 그렇지만, 나름 나의 사고 능력 한계 상으론 무의식적인 동의 후 넘어갈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는데 무뎌지고 순응하려는 노력에 반대되는 외부 변인에 대한 받아들임이 어려웠던 것으로 갈음된다. 그렇다면 상황과 각 개인의 관점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여 생각하고자하는 게 대화 상황에서 안 좋은 효과를 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라면 문제이긴 하지만 내가 떠올리게된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내 가치의 충돌이 이성적인 능력상 표현 불가능한 범주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주 원인이라고 정리하는게 맞을 것 같다. (근데 떼어놓고 보면 진짜 폐급 행동이긴 했다. 나는 운 좋은 줄 알아야한다 복 받았다.)
그냥 될 것 같다는 믿음을 가지는건 눈 딱 감고 해볼 수 있는 기분인데, 그것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직시를 놓지 않는게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거기서 오는 자기 모순을 견디기도 힘들고 가능한건지도 잘 모르겠다. 모든 다른 의견을 내 생각 범위의 확장으로 취급하고 가능한 이해 가능한 범위로 해석하려 하는 점이 토론의 본래 목적에 정말 가까운 것이고 폭 넓은 사고를 이루기 위한 기반이지만 뭐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그냥 내가 생각하는 옳은 방법을 무작정 주장하기엔 자신이 없고, 스스로의 근거를 더 찾았을 때 이야기하고 싶고,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외부의 자극과 새로운 정보가 범람하여 집중하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들이 합리적인 단계적 장기 계획 적층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보다 이룰 수 있을거라고 상상 가능한 방향, 그리고 내가 어떤 노력을 하여 달성할 수 있을지 감 잡을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제시가 있을 때 동력을 받아 몰입할 수 있는 편인 것 같다.
현실적이었으면 한다, 구체적이었으면 한다는 표현은 완전히 부적절하고 그냥 나도 납득하고 상상할 수 있는거면 좋겠는데, 그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한 적절한 의견 표명과 질의를 그때그때 잘 못하고 있는게 문제인 것 같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누구든 감히 오만할 수 있는 상황에 속해있는 것 같다. 이거.. 말을 할 때는 더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처리를 거쳐야할 것이다.
AI 시대가 오면서 역할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었다는 토로가 세간에서 자주 돌지만 그래봤자 사회생활 경험이 2년에 불과한 나는 애초에 기반도 관성도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논할 것이 없다. 그 부분에 대해 과하게 선 긋고 싶어 하는 것조차 나의 나약함과 본능적인 두려움으로부터 오는 비겁한 판단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아니. 내가 너무 양쪽을 고민하다가 수렵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나? 이런 성향이 문제처럼 발동되는 상황이 왜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앞으로도 다양한 자극, 피드백과 조정을 통해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회고 작성을 오랫동안 미뤄왔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유독 최근에 더 다양한 과정과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을 적당한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꾸 이렇게 두꺼운 문단의 막말 욕구를 회고로 푸는걸 보면 평소엔 글 쓸일이 어지간히 없어서 한이 쌓이긴 했나 싶다. 간만의 좋은 독서로부터 영감을 받고 작문의 물꼬가 트여 버겁지 않은 기분이었다. 인생의 부담은 있더라도 기록에 부담이 느껴지는 일은 좀 적어지면 좋겠는데. 모순되는 바람이지만 여유가 된다면 앞으론 회고를 남이 이해할 수 있게 쓰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다
어쨌든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