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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2024 독후감

총 18개의 글이 있습니다.
학습하는 조직
자기계발
이 책에서는 '학습조직'이라는 이상적인 조직의 방향을 제시하고, 학습조직이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학습을 통해서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고, 학습을 통해서 세계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재인식한다. 학습을 통해서 창조하는 능력, 생성하는 삶의 과정에 참여하는 능력을 키운다. '학습조직'의 의미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의 미래 창조 능력을 끊임없이 키우고 확장시키는 조직이 바로 학습조직이다. 그러한 조직은 생존만으로 만족하지 않으며 '생성학습', 즉 만들어내고 창조하는 학습을 추구해야한다. 모든 구성원의 학습능력을 활용하고 헌신을 끌어낼 방법을 찾아내는 조직이어야만 미래에 진정한 경쟁우위를 갖고 앞서나갈 수 있다. 학습 조직을 실현하기 위
효율성
인문
서양인들에게 효율성을 특정짓는 것은 모델화다. 모델화는 실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관념적으로 먼저 구상하고, 그 후에 의지와 행동을 통해 관념적 구상을 현실 속에 구체화하는 구도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목적을 관념적 형태로 떠올리고, 의지와 행동으로 그 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다. 완전성은 최종적 등급의 설정이 가능하다. 불완전한 것들은 그 끝이 없지만 완전한 것은 최선이 있다. 플라톤이 꿈꾸는 국가도 이상적인 모델을 그리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이론, 이상과 실천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점에 대해 고민했다. 이 점에 대해서 그는 시선을 균형점에 고정시킨 채 중간의 이상을 향해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설명한다. 모델화는 수학, 과학 등 기술적 영역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인간관계, 전쟁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인문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Mad Pride](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를 억압하는 강압적인 치료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고, 정신 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역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자폐증과 ADHD와 같은 진단을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닌 신경 다양성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하며, 그러한 것들이 자랑스러운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이 조증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세상이 그에 적응하여 돌아갈 것이고, 많은 사람이 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망상적 신념이 아니게 된다. 다수의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
네 명의 완벽주의자
자기계발
나는 엄청나게 완벽한 결과를 달성하고자 하는 강박이 있는 건 아니라 완벽주의자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회사에서 인턴으로 있으면서 완벽에 가까운 좋은 결과를 추구하는 마음 때문에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공감하고 성찰하면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완벽하게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막상 책의 핵심적인 부분인 '네 명의 완벽주의자' 특성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하는 부분은 오글거려서 몰입하지 못했다. 책을 읽은 후 생각해봐도 근본적으로 좋은 결과를 추구하는 성향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버릴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고, 그걸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앞으로 익혀나가야 할 것 같다. 책에서 완벽주의자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설명
발자크 평전
인문
발자크가 벌여놓은 사업이나 도박에 대한 얘기. 빚 청산을 위해 광고 문구부터 소설까지 가리지 않고 글을 써내며 다작하였고, 거대한 인간극을 구상해 채워나가던 중 명을 다했다는 얘기 등, 모든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의 치열함으로 느껴졌다. 조급함과 즉흥성 때문이었을까 원했던만큼 큰 사업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빚에 허덕이지만, 글에 미친듯한 열정을 가지고 충실하게 살았다는 점은 부러웠다. 어떻게 보면 추하고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이루고 싶은 것을 떠올리고 표현하는 과정과 그 진심은 무엇보다도 낭만적인 것 같다. 나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콜라 테슬라 평전
과학
테슬라는 자신만의 발명 방식을 가진 발명가였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마음속에 구축하고, 마음속에서 최대한으로 개선했다는 확신이 들 때 구현을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실제 실행으로 옮기는 순간 세부 내용이나 결함 때문에 집중력이 흩어지기에 그 장치의 밑바탕이 되는 훌륭한 원리를 잃게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발명을 위해 그의 훌륭한 상상 능력을 적절히 활용했다. 테슬라는 발명의 발견에 있는 아이디어를 확인하면 기꺼이 그것을 글이나 특허로 만들려고 했으며 그것을 대중에게 과시하는데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발명을 이윤을 만이 남기는 제품으로 전환하는 일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기 발명의 바탕이 된 아이디어를 일반인이 파악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들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사회
정치 분야에서 굉장히 뜨겁고, 시기적 특성이 많이 담긴 책인 것 같아서 읽어봤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저자분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것에 대해 어떻다 판단하기가 조심스럽다. 다수의 평가가 어떻든 책 한 권 읽고 동조하는 건 그렇게 좋은 행동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일단 개인적으로도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시의 모습, 화술 면이나 역사에 대한 의식에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정도의 생각은 있었다. 그리고 궁극적인 결과가 어떻냐에 관계없이 R&D 예산 삭감이나 의대 증원 정책도 성급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이게 다 '윤석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불통인 면' 때문에 그런거냐 하면.. 그건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일 같다. 대통령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이런
고래
소설
부단히 타자를 향하는 리비도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도 초월하여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노파와 금복의 이야기는 다분히 초역사적이며 차라리 알레고리에 가깝다. 수십 년에 걸친 그녀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서술하는 달변 역시 다분히 구술적이다. 천명관 작가 고래의 문학동네 판본에는 해설이 함께 실려있다. 해당 해설 중에 있는 위 구절이 고래라는 소설을 설명하는 제일 간결하고 확실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타자에 대한 리비도 때문에 여러 사건을 겪은 후 금복은 그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사업에 집중하며 남성성을 지니게 되고, 결국 좋지 못한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금복 이후의 이야기를 잇는 금복의 딸 춘희는, 자신의 '사업'에 집중하는 금복과 다르게 내면에 몰입하고 스
삼국지
소설
2024년 4월 회고에서도 언급했듯 올해 상반기에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읽었다. 침착맨 애청자여서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삼국지에 관련된 비유나 글을 보면서 언젠간 삼국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마침 시간이 나서 천천히 읽어보았다. 삼국지의 흐름을 보면서 모순적이기도 하고 합리적이기도 한 각 군주, 장수들의 선택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재밌었다. 나는 우리나라에 평범하게 거주하는 시민 중 하나이지만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라와 세력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서 고민하고 싸운다. 고민과 야망의 범위가 나와는 다르지만, 여러 측면의 상황을 보면 각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런 점이 삼국지가
시지프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산문
시지프는 길고 고통스러운 노력 끝에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굴려 올린 돌은 순식간에 저 아래 골짜기로 다시 굴러 떨어진다. 이제 또 다시 그 골짜기 바닥에서 정점을 향해 돌을 굴려 올려야 한다. 그는 들판을 향해 내려간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 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
노르웨이의 숲
소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언제나 함께였다. 잘 어울리는 친구들끼리의 행복한 시간은 기즈키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끝나 버리고 만다. 열아홉 살이 된 와타나베는 도쿄의 한 사립 대학에 진학하여 슬픈 기억이 남은 고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둘은 슬픔을 공유한 사이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연민과 애정을 나눈다. 하지만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어느 날, 나오코는 자신이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는 편지를 보내고, 와타나베는 요양원으로 그녀를 찾아가면서 비로소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게 된다. 한편 그는 나오코를 사랑하면서도 같은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에게도 애정을 느끼게 된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에는 소중한 무언가를
황야의 이리
소설
자신을 '황야의 이리'라고 생각하는 하리 할러라는 인물의 체험을 담은 소설이다. 수기에 따르면 그의 내면에서는 '이리'와 '인간'이 서로 반목하는데, '인간'의 정신적인 관심, 윤리적·미학적 이상들, 고상한 삶과 시민적 삶의 방식을 고의 속에 있는 '이리'는 가식적이고 무의미한 것이라고 낙인찍고 인간을 경멸한다. 반대로 그의 속에 있는 '인간'은 길들여지지 않고 인간을 경명하며 공동체에서의 삶, 예술과 문화에의 참여를 거부하는 거친 이리의 야성을 비난한다. 하리 할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서 낯선 감정을 느끼며 고독한 방황을 하는 자신을 '황야의 이리'라고 부른다. 현대 문명과 기술의 발전에 혐오를 느끼는 그는 시민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면서 시민 계층의 평온과 안정을 동경하면서도 만족감과
영향에 대한 불안
인문
블룸 이전의 문학이론이 “후배 작가가 선배 작가를 모방하는 문학 전통의 연속성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해왔다면, 블룸 이론은 문학 전통의 연속성과 유사성이 아닌 ‘왜곡’과 ‘차이’ ‘오역’에 주목한다. 블룸에게 중요한 것은 문학 전통의 연속성이 아니라 불연속성, 즉 선배 작가의 모방이 아니라 선배 작가의 모방을 넘어서 능가하는 것이며, 그는 이것을 ‘시적 오류’라는 창조적 해석을 두고 펼쳐지는 갈등과 투쟁의 미학이라고 지칭한다. 다시 말해 후배 시인들은 위대한 선배 시인의 ‘영향’이라는 방해자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스스로 독창적인 시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배 시인은 선배 시인을 흠모하고 추앙하면서 모방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려면 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안과 씨름
사마의 평전
철학
사마의(司馬懿, 179-251)는 후한말과 삼국 시대의 주요 인물이자, 진나라의 실질적인 건국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인공인 제갈량과 맞서는 라이벌 역할로도 유명하다. 사마의가 태어날 무렵은 후한 시대가 말기에 접어들며 황권의 약화와 환관-외척들의 권력투쟁으로 인하여 쇠락의 길을 걷던 시기였다. 조조는 여러 군벌을 제압하고 황제인 헌제를 옹립하며 권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조조는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하여 천하의 유능한 인재를 모으는데도 공을 들였는데 그중 오랫동안 눈독을 들여 지켜본 인물중 하나가 바로 사마의였다. 사마씨는 한나라를 건국한 공신의 명문가였고, 사마의의 아버지 사마방은 한나라의 고위관료를 지냈으며 정직하고 공정하여 주변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사마방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산문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의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며,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수록 더 많이 볼 수 있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 분류하기를 멈추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
자기계발
오늘날에는 생존이라는 프로젝트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의미와 복잡성을 띠게 됐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 세기 전에 비해 21세기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우리 삶을 위협하는 많은 것들은 실상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기후변화, 점점 증가하는 소득 불평등, 새로운 통신 기술의 거대한 복잡성과 더불어 우리는 내면의 정신 상태에 대한 새로운 위협에도 대처해야 한다. 인간은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잘 판단하지 못한다. 우리는 살면서 생기는 여러 복잡한 일들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안겨줄지 끊임없이 예측하는데, 그게 항상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단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지 예측하면서 저지르는 실수가 모여 인생